우리나라 가곡에는 봄의 서정을 표현한 노래들이 참 많이 있다. 그 많은 봄노래 중에서도 봄의 전령사 노릇을 톡톡히 하는 진달래가 참 많이도 등장한다.
‘봄이 오면’이라는 노랫말이다.
“봄이 오면
산에 들에 진달래 피네
진달래 피는 곳에 내 마음도 펴
건너 마을 젊은 처자 꽃 따러 오거든
꽃만 말고 이 마음도 함께 따 가 주”
(김동환 작사, 이흥렬 작곡)
또한 ‘진달래’라는 노랫말은 이렇게 시작된다.
“겨울에 오셨다가 그 겨울에 가신님이
봄이 오면 그리워라 봄이 오면 그리워라
눈 맞고 오르던 산에는 진달래가 피었오
눈 맞고 오르던 산에는 진달래가 피었오
겨울에 오셨다가 그 겨울에 가신님이
봄이 오면 그리워라 봄이 오면 그리워라
눈 맞고 오르던 산에는 진달래가 지오
눈 맞고 오르던 산에는 진달래가 지오”
(피천득 작사, 김순애 작곡)
아마도 진달래를 노래한 대표적인 서정시는 소월의 ‘진달래 꽃’일 것이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 드리우리다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우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봄이 되면 흐드러지게 피어 그 연분홍 빛 수즙은 색깔로 고국의 온 산하를 뒤 덮는 진달래는 진정 한국을 대표하는 봄의 꽃이다. 고국의 어릴 적 내 살던 뒷산 깊은 계곡에 수줍게 피어 있던 진달래, 그 꽃이 그립다. 그 꽃 내음이 그립고, 그 꽃 맛이 그립다.
내가 살던 고향 동네 이름이 “화락동(花落洞)”이다. “꽃이 떨어지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봄이 시작되면 온 산이 연분홍 진달래로 물이 든다. 깊은 계곡 군데군데 잔설이 아직 남아 있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 꽃은 겨울을 향해 이제 비켜나라는 듯 의젓하게 피어난다. 겨울이 비켜나기 싫어 봄을 시샘하듯 찬 기운 이미 잃어버린 바람 하나 일으키면 가녀린 꽃잎들이 흩날려 온 산을 덮는다. 그리고 그 꽃잎들이 뒷산 끝자락에 붙어 아득하게 내려다보이는 마을 저수지 그 푸른 물 위로 봄바람 따라 춤을 추며 군무를 이루며 내려앉는다. 그래서 꽃이 떨어지는 마을이다. 아마도 지금 그곳에는 진달래꽃들이 이 찬란한 봄 잔치를 벌이고 있을 것이다.
진달래 꽃 내음이 온 마을에 진동하면 마을 아이들은 이미 진달래꽃 화원이 되어버린 마을 뒷산에 오른다. 온 산을 휘저으며 그 꽃향기에 취한다. 그 연분홍 순결에 가슴을 적신다. 고향 산천을 떠나 먼 이국땅에 살고 있어도 고향 떠난 지 언 40여년 세월이 자났음에도 봄이 오면 그 꽃의 향기가 가슴속 가득 느껴지는 이유는 봄날이면 그 꽃 속에서 그 꽃향기에 취하고 입 안 가득 그 꽃 맛에 취해 지냈기 때문일 것이다.
먼 어느 봄 날 온 종일 산을 헤매며 진달래꽃과 봄 잔치를 벌이다 한 아름 그 꽃을 꺾어 작은 가슴에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엌 구석에 업어져 있는 바가지에 정갈한 물을 받아 꺾어 온 그 꽃을 밤새 담가 놓았다. 아침에 일어나 학교 가는 길 아직도 싱싱한 그 꽃을 가슴에 안고 동행한다. 학교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서려니 왼지 쑥스럽다. 국민학교(그때는 초등학교가 아니고 국민학교였다.) 2학년 어린 마음에 반 아이들이 놀리지 않을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아이들이 “와!”하고 소리친다. 한 아름 꽃다발을 교단에 있는 화병에 꽂아 놓고 홍당무가 되어버린 얼굴을 하고 얼른 자리에 와 앉았다. 얼마 후 담임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신다. “와! 진달래꽃이네.” 꽃 속에 얼굴을 파묻고 향기를 맡으시는 선생님의 얼굴은 또 한 송이의 진달래꽃이었다. “누가 이 꽃 꽂아 놓았니?” 선생님이 물으신다. 아이들이 일제히 내 이름을 부른다. “동훈이요!” 그 이후로 나는 미화부장이 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 아이들이 다 돌아간 후에도 선생님은 나를 남겨 두시고 함께 교실 환경정리를 하시곤 하셨다. 고향을 떠나 서울로 전학을 갈 때가지 진달래꽃처럼 그렇게 곱디고운 시골 학교 담임선생님의 사랑을 받으며 지냈다. 그 진달래꽃 추억이 꿈엔들 잊힐리야!
서울로 올라와 사춘기 청소년 시절을 보내던 어느 봄 날 독한 향수병을 앓으며 지었던 시가 있다. 어김없이 찾아 온 콜로라도의 이 봄 날에 고국의 온 산하에 피어날 진달래 봄 잔치를 그리워하고 또 그리워하며 “진달래” 그 시를 다시 되뇌어 본다.
“오는 봄 생각하며 그 날을 생각하며
화락동 뒷산 진달래꽃
그 연분홍 순결을 따서
가만히 내 마음 호숫가에 던져 놓으면
오는 봄 조용히 깊어만 가고
내 마음은 그 먼 곳에 가고 없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