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우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말끝마다 “당신이 뭘 알아요?”라고 하며 시도 때도 없이 남편을 무시하고 구박하는 어떤 부인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부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남편이 교통사고를 당해 중환자실에 있으니 빨리 오라는 연락이었습니다. 부인은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려갔지요. 그러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남편이 죽어서 하얀 천을 뒤 집어 쓰고 있었습니다. 허구한 날 남편을 무시하고 구박했지만 막상 죽어 뉘어 있는 남편을 보니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더랍니다. 부인은 죽은 남편을 부여잡고 한없이 울었지요. 부인이 한참을 그렇게 울고 있는데 한얀 천을 뒤 집어 쓰고 있던 남편이 슬그머니 천을 내리면서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여보, 나 아직 안 죽었쓰∼∼ㅋㅋㅋ” 그러자 깜짝 놀란 이 부인이 울음을 뚝 그치면서 남편에게 소리를 버럭 질렀답니다. “당신이 뭘 알아. 의사가 죽었다는데....!”
구약성경 창세기에 보면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 하였으니”(창세기 3:20)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인류 최초의 사람 아담이 자기 아내의 이름을 하와라고 지어주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이름을 부여했다는 것이지요. 여기에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이것을 헤드쉽(Headship, 머리됨)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인류 최초의 가정 안에서 남편인 아담을 가정의 머리로 세우시고 헤드쉽을 발휘하도록 리더쉽의 귄위를 부여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 선생님께서도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고린도전서 11:3)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은 바로 이 헤드쉽을 공격하는 것으로 아담의 가정, 곧 에덴의 행복을 파괴하는 것을 시작했습니다. 사탄은 아담을 먼저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아내 하와를 먼저 공격했습니다. 하나님이 부여하신 남편 아담의 헤드쉽을 무시하게 만들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열매를 따먹는 그 중차대한 문제를 남편에게 물어보지도 않고 하와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해 버리도록 유혹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결정한 행동을 아담도 똑같이 따라하도록 강요해서 따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를 따먹게 하므로 결국 에덴의 행복은 산산 조각이 났고 그의 후손들인 온 인류도 상실된 에덴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인정하고 쉽지 않을지 모르지만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하고 결론내고 행동해 버리고 싶어 하는 하와식의 교만한 유전자가 모든 여자들 속에, 아니 모든 사람들 속에 내재되어 있습니다. 이런 하와식의 태도는 창세기 3:16절에 잘 나와 있습니다.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 여기서 ‘남편을 사모하고’라는 말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요? 많은 사람들은 남편을 그리워한다거나 사랑하고 연모한다는 의미로 해석합니다.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혀 뜻밖의 이런 해석도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남편을 주장하고 싶어 하는 욕구를 나타내는 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번역은 “네가 네 남편을 주무르고 싶어 하지만”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마치 “죄의 소원(죄가 너를 조절하려 하지만)이 있지만 너는 죄를 다스리라”(창세기 4:7)는 문장 구조와 같습니다.
남자와 여자에게는 그 역할에 차이가 분명히 존재합니다. 즉 아무리 평등을 주장해도 남자가 아이를 출산하는 일은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렇다고 남자 없이 여자가 제 마음대로 아이를 낳을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고리도전서 11:11)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히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영적 리더십을 아담(남자)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그 헤드십(머리됨)을 통해 하나님 자신의 영광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 점에서 아내가 남편을 무시하는 일은 하나님의 계획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 됩니다. 아내의 입장에서 아무리 자신 스스로 쉽게 결정하고 행동해 버릴 수 있는 일이라 할지라도 먼저 남편에게 물어보고 남편으로 하여금 최종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헤드쉽을 인정해 주는 배려가 있을 때 가정 행복과 질서는 배가 될 것입니다. 이제라도 진정한 가정의 행복을 위해 남편의 머리됨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왜 신부들은 결혼식에서 면사포를 써야 하는지 아십니까? 저도 몰랐는데 이런 이유랍니다. “이제 내게는 머리가 없습니다. 오직 남편인 당신만이 나의 머리입니다.”라는 고백으로 면사포 쓴다는 것입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만들어낸 우스개 같은데 이 5월 가정의 달에 웬지 모르게 깊은 의미로 다가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