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외로움’과 ‘그리움’과 ‘기다림’의 연속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인가 봅니다. 한국의 소설가 이외수씨의 ‘여자가 여자를 모른다.’라는 글 중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외로움을 겁내지 말라. 그대가 어디서 무엇을 하더라도 그대의 뼈저린 외로움은 물리칠 방도가 없으리니, 외로움은 평생의 동반자, 비록 그대가 마침내 성인(聖人)의 반열에 오른다 하더라도 그 놈은 한 평생 그대 곁을 떠나는 법이 없으리라.” 이 분의 말처럼 정말 성인의 반열에 올랐을 법한 성경에 등장하는 바울 선생님도 뼈에 사무치도록 지독한 외로움을 경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가 복음 전하다가 두 번째로 로마 감옥에 투옥되어 죽을 날을 얼마 남겨 놓지 않고 그의 제자인 디모데에게 쓴 두 번째 편지(신약 디모데후서)에 보면 오랜 감옥살이에 찌든 노 사도의 외로움의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어서 속히 내게로 오라”(디모데후서 4:9).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4:13). “겨울 전에 너는 어서 오라”(4:21). 로마의 지하 감옥은 춥습니다. 그런데 노 사도의 몸과 마음을 더 움추려 들게 만드는 겨울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추위를 견디게 해 줄 ‘겉옷’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는 몸의 추위보다 더 견디기 힘든 추위가 있었습니다. ‘마음의 추위’였습니다. 외로움입니다. 지독한 외로움! 함께했던 주변의 모든 이들이 하나 둘 떠났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제자를 향해 “디모데야 어서 와라! 겨울이 오고 있어. 빨리 와!” 이렇게 외로운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외로움은 ‘그리움’을 수반합니다. 사람이 그립습니다.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도 그립지만, 지난 세월 가운데 내가 섭섭하게 했던 사람들도, 나를 섭섭하게 했던 사람들도 모두가 그립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지난 날 자신을 섭섭하게 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사역을 위해 자신의 곁에서 내쳐야만 했던 마가를 데리고 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가 이제는 나의 일에 유익하다’고 마가의 존재 의미를 새롭게 해석합니다. 또한 데마라는 사람이 자기를 버리고 떠났다고 섭섭함을 표현합니다. 외로우면 모두가 그립습니다.
미당 서정주 시인의 ‘푸르른 날’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가수 송창식이 곡을 붙여 부른 노래이기도 한데, 제가 참 좋아합니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저기 저기 저, 가을 꽃 자리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데
눈이 나리면 어이하리야!
봄이 또 오면 어이하리야?
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
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엔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시인의 노랫말 가운데 등장하는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언제 일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마도 모든 생명체들이 치열하게 삶을 살아내는 오늘이라는 ‘여름’이겠지요. 인생의 계절 여름은 치열합니다. 성장하고 키워, 열매 맺히기 위해 발버둥치는 계절입니다. 그 치열함 속에 사람들과 부대끼고, 싸우고, 경쟁하고, 울고, 때로는 웃고......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 치열함 속에 내 몸과 마음을 내 맡겨 놓을 수 없는 인생의 계절이 옵니다. 단풍 드는 가을입니다. 어쩔 수 없이 거두어야 하고 정리해야하고 내려놓아야 하는 때가옵니다. 가을은 다양한 색깔로 물드는 계절입니다. 내가 살아 낸 내 삶 스스로가 칠해 놓은 색깔도 있지만 또 다른 의미의 해석으로 덧칠해 질 색깔들로 인해 인생의 계절 가을은 영롱한 빛들로 물드는 계절입니다. 그래서 가을은 시인의 또 다른 노랫말처럼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계절인 것 같습니다. 치열한 인생살이를 통과하며 내가 상처 입혔던 사람도, 상처 입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사람도, 가슴속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사람도 이제는 ‘그리워할 사람’으로 새롭게 덧칠해 질 수 있다면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내 인생의 계절은 더욱 아름답겠지요.
그렇게도 무덥고 푸르디 푸르던 여름도 이제 지쳐가고 있습니다. 가을이 오고 있다는 증거군요. 가을이 기다려집니다. 이 여름에 새로운 빛깔로 만날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가을을 기다려 보겠습니다.
외로움은 그리움을, 그리움은 기다림을 잉태합니다. 지겨운 만남이 그리워지는 만남이 되고, 아팠던 사람들이 한 바탕 눈물지으며 포웅할 수 있는 만남으로 기다려지려면 내 마음에 변화가 찾아와야 하겠지요. 어찌 냄새나는 인간의 심성으로 그것이 가능키나 하겠습니까? 노 사도 바울 선생님은 감옥 속에 앉아 지독한 외로움 때문에 힘들어 하면서도 그 외로움을 이렇게 이겨냈습니다. “주님이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셨다!”(디모데후서 4:17) 주님이 내 곁에 서셔서 나의 외로운 마음을 위로하시고, 상처 난 마음을 싸매어 주실 때 외로움도 이기고 아픈 기억의 사람들도 이제는 그리운 사람들로 기다려지는 관계의 기적이 내게도 일어 날겁니다. ‘초록이 지쳐 단풍 드는’ 그 영롱한 색깔들로 물들여질 아름다운 가을을 맞이하기 위해 오늘, 그리운 사람들을 그리워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