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Native American)이었던 인디안들은 자연 환경의 변화와 그 변화에 반응하는 내면적인 마음의 움직임을 주제로 매월 그 달의 명칭을 붙였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1월은 ‘마음 깊은 곳에 머무는 달’(아리카라 족), 2월은 ‘삼나무에 꽃바람 부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3월은 ‘한결같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달’(아라파호 족), 4월은 ‘머리맡에 씨앗을 두고 자는 달’(체로키 족), 5월은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아라파호 족), 6월은 ‘나뭇잎이 짙어지는 달’(체로키 족), 7월은 ‘천막 안에 앉아있을 수 없는 달’(유트 족), 8월은 ‘다른 모든 것을 잊게 하는 달’(쇼니 족), 9월은 ‘옥수수를 거두어들이는 달’(테와 푸에블로 족), 10월은 ‘잎이 떨어지는 달’(수우 족)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는 달’(카이오아 족),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아라파호 족) ‘아 침에 눈 쌓인 산을 바라보는 달’(위쉬람 족), 12월은 ‘무소유(無所有)의 달’(퐁카 족) ‘침묵하는 달’(크리크 족)등이 있습니다.
11월 문 앞에 서서 문득 아라파호(Arapaho) 인디언 부족들의 내면속에 표현되어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는 의미를 되새겨 보았습니다. 인디언의 또 다른 부족들에게 9월은 ‘가을이 시작되는 달’이었습니다. 그리고 10월은 ‘가난해지기 시작하는 달’, 11월은 ‘많이 가난해지는 달’이었고, 12월은 드디어 아무것도 가질 것이 없는 ‘무소유의 달’이었습니다. 이런 표현들은 가을을 지나 추운 겨울이 찾아오는 계절의 변화를 바라보며 무엇인가가 없어지고 상실되어 가는 내면의 스산한 추운 느낌을 말하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푸르렀고 풍성했던 것들이 떨어지고 죽어가는 상실의 계절이 흘러가는 한 지점에서 그들은 11월을 ‘많이 가난해 지는 달’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모든 것이 죽어가고 한없이 움추러 드는 추운 계절에도 마음만은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고 붙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마음에 무엇인가를 남기고 싶어 합니다. 남기고 싶고 남아 있는 것들, 그것은 지난 세월의 ‘추억’들입니다. 인생살이의 연륜만큼이나 겹겹이 쌓여가는 것이 추억입니다. 좋은 추억이 있고 나쁜 추억도 있습니다. 간직하고 싶은 추억도 있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추억인데 지워지지 않는 것들도 있습니다. 좋은 추억이든 나쁜 추억이든 그 추억들로 인해, 살아온 인생의 뒤돌아봄 속에 풍성함이 있고 자기성찰이 있다면 그 인생은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닌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또한 누구나 세월의 흐름 속에서 마음에 무엇인가를 붙들고 싶어 합니다. 붙들고 싶고 소망하는 것들, 그것은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인생살이에 대한 ‘꿈’들입니다. 손에 금방이라도 잡힐 것 같은 꿈도 있고, 공상의 세계로만 끝나버릴 것 같은 꿈도 있습니다. 절망적인 환경 속에서도 그 환경들을 능히 이기고 극복하게 해주는 꿈도 있고, 수많은 시도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시행착오를 거듭해야만 하는 꿈도 있습니다. 어떤 꿈이든지 꿈이 있음에 그 인생은 살아있는 인생입니다. 꿈이 없는 인생은 죽은 삶입니다. 어떤 꿈이든지 그 꿈으로 인해 절망적이고 척박하기 짝이 없는 삶속에서도 찬란하게 다가올 인생의 봄날을 바라보며 내일의 소망을 붙들고 있다면 그 인생은 또한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닌 인생’이 될 것입니다.
11월의 사립문을 열고 한 발을 들여 놓습니다. 2014년 한 해를 결산해야 하고, 그리고 12월의 문턱을 넘으며 새로 다가오는 2015년을 준비해야 하는 계절입니다. 뒤 돌아 보면 한 해가 화살처럼 빨리도 지나갔습니다. 누군가의 푸념처럼 미국의 이민 생활은 더 빨리 가는 것 같습니다. 한 해를 마감하며 내 추억의 창고에 무엇을 담아내야 할까를 생각해 봅니다.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린 11월’이 되지 않기 위해 오늘 지난 한 해의 사역들을 꼼꼼히 갈무리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새로 오는 한 해를 위해 성실하게 준비하고 계획해야 하겠습니다. 이 한 해도 좋은 추억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리고 그 하나님께 무한히 신뢰하는 마음으로 다가올 2015년의 큰 꿈과 소망을 굳게 붙들며........ 시인 정희성 님의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는 시 한편을 음미하며 11월의 마당을 거닐어 볼까 합니다.
“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남아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지금은 어디에 머물렀을까?
어느덧 혼자 있을 준비를 하는
시간은 저만치 우두커니 서 있네.
그대와 함께한 빛났던 순간
가슴에 아련히 되살아나는
11월은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
빛 고운 사랑의 추억이 나부끼네.”